글
옛날
내가 다니던
시골의 작은 국민학교(초등학교)는
비가 많이 오면
운동장에 물이 고여
잘 빠지지 않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교장 선생님은
종 종
6학년 중 한 반을
체육시간에 동원
운동장에 고여있는 물을 빼내는 작업을
시키시곤 했습니다.
그런 배수작업에 동원되었던
어느 날
한참
땀을 흘리며
물길을 내고 있는데
옆에서 지켜보고 계시던
교장 선생님이
물으십니다.
반장!
네! (제가 그때 반장이었습니다.^^)
물은
왜
똑바로 흐르질 않고
이렇게
구불구불 흐르지?
네?
뜬금없는 질문에
잠시
어리둥절해합니다.
그야 뭐
낮은 데를 찾아.....
대답을 하려다
문득
교장 선생님이
단순히
물리법칙에 따른
자연현상만을 물으시는 게 아닌 것 같아
주저합니다.
지금 바로 대답하지 않아도 되니
두고 한번 잘 생각해 봐!
네..................
불쑥 던지시고
대답을 재촉하지 않으신
교장 선생님의 이 질문은
그 뒤
오랜 시간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선(禪) 문답의 화두(話頭)처럼
이따금씩
머리에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어서야
독서를 통해
그 질문이
인간수양의 근본을 다룬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즉
老子 曰
노자가 말하기를
水 有 七 德
물에는 일곱 가지의 덕목(德目)이 있으니
1, 낮은 곳을 찾아 흐르는 겸손(謙遜)
2, 막히면 돌아갈 줄 아는 지혜(智慧)
3, 더러운 물도 받아주는 포용력(包容力)
4, 어떤 그릇에나 담길 수 있는 융통성(融通性)
5, 바위도 뚫어내는 끈기와 인내(忍耐)
6, 폭포처럼 투신할 줄 아는 용기(勇氣)
7, 유유히 흘러 바다를 이루는 대의(大義)
上 善 若 水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물의 좋은 점은
만물(萬物)을 이롭게 해 주면서도
그 공을 다투지 않고 (水善利萬物而不爭)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을 찾아 흐른다. (處衆人之所惡)
그러므로
물은
거의 도(道)에 가깝다.(故幾於道)
따라서
우리의 삶도
물처럼
물 흐르듯 사는 것이
최선(最善)이라 할 수 있다.
서당 훈장 선생님 같았던
교장 선생님이
질문을 통해
나에게 전해주려 하셨던 말씀은
아마도 바로
이거였던 것 같습니다.
내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 생각하셨기에
대답을 재촉하지 않으시고
천천히 잘 생각해 보라고 하셨던 것 같았고요!
읽어보면 읽어 볼수록
마음에 와닿는
좋은 말들입니다.
고마우신 교장 선생님
그 말씀 잘 받들어
내 삶의 근본으로 삼아보려 합니다.
그런데...
막상
실천에 옮겨보려 하니
그게
쉽지가 않네요!
내가
따라 하기엔
걸리는 부분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잘 따라 하는 듯하다가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속물 본성 때문에
도로아미타불이 되곤 합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노력을 해보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후회하고 자책하는 경우만
더 많이 생깁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은근히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이쯤 되면
포기하고
그냥
참고만 하는 정도로
적당히
넘어가면 좋으련만
뭐든지
끝까지 잘해보려 하는 성격 탓에
그러질 못합니다.
도사(道士)되려고
도(道)를 닦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지금
왜
안 해도 될 마음고생을
이렇게 사서하고 있지요?
슬그머니
반발심이 일어납니다.
노자의 말에
트집을 잡고
나를 정당화해
이 마음고생에서 벗어나 보려 합니다.
낮은 곳을 찾아 흐르는 게 겸손이라고?
막히면 돌아가는 게 지혜라고?
그게
무슨 겸손이고 지혜야?
힘이 약할 때 하는 변명이지.....
힘이 세어지면
금세
폭력적으로 변해(홍수, 해일)
무자비하게 타고 넘어가 휩쓸어 버리잖아?
약한 자엔 강하고
강한 자엔 약한
기회주의자의
비겁한 기회주의적 처신일 뿐.....
이렇게
딴지를 걸고 보니
조금은
마음의 위안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잊고 지냅니다.
아니
의식적으로
잊고 지내려 합니다.
마음 한 구석에
조금은
찜찜한 부분이 남아 있어서요!
따라 해 보려다 잘 안되니까
심통을 부려
딴지를 걸긴 했지만
솔직히
좋은 말들임을
부정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고
세월 따라
나이도 먹어갔습니다.
그러며
세상을 살아보니
세상만사는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동전의 양면처럼
얼마든지
서로 다른 해석이 가능하더군요!
그래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같은 나라 같은 국민도
좌(左)와 우(右)의 하는 말이 다르고
같은 종교 안에서도
종파가 나누어지고
신의 영역에서 조차도
창조론과 진화론이
각각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공존하나 봅니다.
결국은
어떻게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 하는
그 차이인 것 같습니다.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부정적인 세상이 보이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긍정적인 세상이 보이고.....
선택은
각자 개인의 몫이 되겠지요.
완성을 향해 끝없이 노력은 해야겠지만
결코
완벽하기를 바라거나 집착해서도 안될 것 같고요!
젊은 시절 한때
상선약수의 삶을 흉내 내 보려다
스스로의 한계를 알고
마음고생 끝에 얻은
저의 최종 결론입니다.
괴테가 그랬다지요?
신(神)만이 완벽하다.
인간은
그저 완벽하기를 소망할 뿐...이라고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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